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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문학동네 |
전쟁 이야기는 힘들다.
그러나 전쟁을 서사의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수식어를 달고 있거나 한다. 평온하게 유지되던 체제가 한 순간 뒤집히고 짐승같은 비상식이 범람하는 시기 ...
<피아노 교사>는 역자가 말하던 대로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홍콩에서 생존과 사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제목이 왜 '피아노 교사'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피아노 교사'는 이야기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 하지는 않는다. 전쟁 당시와 종전 10년 후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이랄까 ... 43년의 시점에서는 생생하게 살아남아 움직이고 서로를 할퀴어대던 인물들이 53년의 시점에서 '피아노 교사'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노인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면 읽는 도중 놀라고 만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눠 볼 수 없다, 전쟁 때는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작중인물들의 대화가 서로 다른 입에서 나와 다른 의미로 읽히는 상황이 흥미롭다. 가장 교활한 기회주의자이면서 야망에 알맞게 수완도 좋았던 남자인 빅터는 트루디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말을 늘어놓는다. 트루디 역시 윌에게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윌의 말에 심하게 흔들리고, 자신이 하던 것을 놓고 수용소로 들어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한다. 콜렉션의 위치를 알던 세 명 중의 한 사람인 탐욕스러운 여사가 오후의 티타임에 피아노교사를 초대해서 같은 말을 할 때에는 지독한 자기모순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책의 묘미는 생생한 풍경 묘사와 인물들 간에 오가는 탄력적인 대화에 있는 것 같다. 마치 그 대화의 현장에 있는 것 같다. 무의미한 대사 하나도 절대 무의미해지지 않고, 모든 구석에서 지나치게 명료하여 지루한 감을 주는 실수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전쟁 상황에서 각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이용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갈등에 부딪혔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여러 시점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처음에는 윌의 입장에 감정이입하여 오츠보가 홍콩에서 크라운 콜렉션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를 이용하려는 트루디가 단순히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수완 좋은 이 여자 역시도 자기가 무엇을 이용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결국 이용 당하는 결말에 이르는 것일까? 정말 지키려는 게 무엇이었는지 까먹은 상태로 감당할 수 없는 곳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바깥에 있으며 그 모든 굴욕을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 달링, 이라고 말하는 트루디의 성정으로 그녀 스스로가 바깥 세상에 휘말려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53년의 황폐한 윌을 사로잡고 있는 죄책감이라는 것의 근본을 알게 된다. 윌은 말한다. 때로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선택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 날 내버려두고 내게 다가오지 말라고. 수용소에서 음식 배급을 어떻게 할지, 청소 당번은 어떻게 정할지, 하는 쓰레기 같은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윌은 선량한 정의감과 자신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 트루디를 돕는 것을 거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결국 수용소 바깥으로 나가 그곳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뿐인 자신의 비겁함을 발견하게 된다. 비겁함을 정의로 위장하고 있었음을. 트루디가 도둑질을 하라면 도둑질을 하고, 가정을 부수라면 가정을 부수고, 누군가를 배반하라면 기꺼이 그를 배반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경계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강하다고. 그렇지만 트루디도 윌 때문에 변한다.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인한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윌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윌에게 단 한 번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거절당하지만, 교장이었던 여사가 '누가 알았겠어, 그런 강한 트루디에게 부서질 심장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말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윌에게 거절 당한 그녀는 막다른 곳에서 서서히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윌은 그 죄책감에 방문도 닫지 못 한다. 트루디가 언젠가는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그것 때문에, 어떻게도 하지 못 한다. 전쟁은 끝나고 오츠보는 일본으로 끌려가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들이 변하고 말았다. 트루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윌은 자조적인 농담을 일삼으며 빅터의 전시용 영국인 운전사 행세를 하며 산다. 빅터는 여전히 자신은 중국인을 위해 한 일이라고 모든 상황을 합리화하고, 멜로디는 트루디가 건네 준 커다란 보석을 갖고 트루디의 딸인 로켓을 키우며 살아간다.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거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윌은 사라진 트루디를 기다리며 자신의 비겁함을 자책한다. 그렇지만 윌을 제외한 인물들은 과거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탐욕스러운 교장이었던 여사는 은퇴한 연금만으로 엄청난 땅을 사들이면서도 자신은 소외계층까지 사랑하는 독실한 신자라는 사실을 변함없이 강조하고, 빅터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전쟁 때 잘못된 결정을 내렸어 ...'라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평가만을 중얼거린다. 비밀을 알던 셋 중에 윌과 함께 수용소에 있던 사람은 전쟁 때 국가를 배반했다는 죄책감으로 총으로 자살한다. 인물들이 과거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이 매우 극적으로 대립한다.
그렇다고 윌이 트루디에게 협력했다면 과연 자신을 비겁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변한 채 살아남은 트루디와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전쟁이든 점령국이든 정치든 상관하지 않은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잠들 따뜻한 연인으로 지낼 수 있었을까? 이미 그런 일은 불가능했던 상황이 아닌가? ... 이런 생각을 하면 윌이 안고 있는 그 죄책감이라는 것도 결국은 기형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짐승같은 전쟁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런 비정상적인 죄책감이나 비정상적인 자기기만이 없이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평생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을 짊어진 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생존과 사랑을 위해 황폐한 전쟁 상황에서 아무도 제정신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는 것, 이용당하거나 이용한 채 버려져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 속에서 홀로 시린 발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
이래서 전쟁 소설은 힘들다.
날짜까지 계산한 치밀한 구성도 좋지만,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만한 점은 특히나 저자가 뉴욕 공립도서관과 홍콩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얻었다고 밝힌 것과 같이 철저한 자료조사에 있다. 당시 사람들이 무얼 먹었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사교 파티라는 것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모였는지. 또한 홍콩 포르투갈 중국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각 나라의 상황과 그에 따라 다른 국적을 가지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대우를 받았는지.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군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그들이 가진 열등감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큼 생명력 있는 도시로 묘사되는 홍콩, 은 습기가 높아 절대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곳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가고 싶어졌다.
사족: 표지는 에러다 ..................